경기도서 12회 한국피플퍼스트대회 열려
직접 정한 슬로건은 ‘자립·전국화·건강권’
춤·노래 및 발언들로 가득했던 뜨거운 열기
“발달장애인의 힘으로 세상 바꾸자!”

제12회 한국피플퍼스트대회에 참가한 전국의 발달장애인들이 각 지역의 이름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김소영
제12회 한국피플퍼스트대회에 참가한 전국의 발달장애인들이 각 지역의 이름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김소영

발달장애인의 대명절이자 축제인 ‘제12회 한국피플퍼스트대회’가 열렸다. 대회 1일 차인 25일 오후 2시,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킨텍스에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조력자 700여 명이 모였다. 강원, 경기, 경남, 경북, 광주, 대구, 대전, 부산, 서울, 울산, 인천, 전남, 제주, 충북 등 전국 각지에서 집결했다.

“발달장애인도 독립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자”
“발달장애인의 힘으로 피플퍼스트를 전국에 만들자”
“내 몸의 주인은 나다. 발달장애인의 몸에 무관심한 사회를 바꾸자”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이 치열하게 토론해 스스로 정한 이번 슬로건(함께 외치는 구호)은 세 가지다. 시작 전, 들뜬 표정으로 앉아 있던 발달장애인들. 음악이 나오면 벌떡 일어나 춤을 추고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리고 하루 종일 나의 목소리를 통해, 또 동료의 목소리를 통해 맘껏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다.

피플퍼스트대회 참가자들이 직접 적은 피켓을 들고 있다. 왼쪽부터 “발달장애인도 보호자 없이 어떤 곳이든 존중받으며 이용할 수 있다”, “우리는 동상일몽 인권활동가”, “내 몸의 주인은 나”라고 적혀있다. 사진 김소영
피플퍼스트대회 참가자들이 직접 적은 피켓을 들고 있다. 왼쪽부터 “발달장애인도 보호자 없이 어떤 곳이든 존중받으며 이용할 수 있다”, “우리는 동상일몽 인권활동가”, “내 몸의 주인은 나”라고 적혀있다. 사진 김소영

- 춤추고 퀴즈 풀며 ‘몸 풀고 마음 여는’ 시간

본격적인 슬로건에 대한 주제 발표에 앞서 대회의 분위기를 풀기 위한 ‘몸풀기 마음열기’ 시간이 진행됐다. 가수 로제의 노래 ‘아파트’가 흘러나오자, 참가자들은 무대 앞으로 몰려 나와 신나게 춤을 추었다. 그러나 사회를 맡은 윤종혁 경기피플퍼스트 경기수원 위원장이 안전을 우려해 노래를 멈추고 자리로 돌아가 달라고 안내하자, 참가자들은 썰물처럼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참가자들이 가수 로제의 노래 ‘아파트’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무대가 참가자들로 가득 찼다. 사진 김소영
참가자들이 가수 로제의 노래 ‘아파트’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무대가 참가자들로 가득 찼다. 사진 김소영

‘몸풀기 마음열기’는 퀴즈 프로그램으로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눈을 감고 과자의 이름을 맞히거나 지역 명소를 알아맞히는 게임을 즐겼다. 손이 여기저기 번쩍 들리며 경쟁이 한층 치열해졌다. 문제를 맞히기 위해 겉옷이나 쇼핑백, 신발을 흔들거나 휴대폰 플래시를 켜며 눈에 띄려는 모습도 곳곳에서 보였다. 그렇게 모두가 즐겁게 몸을 풀고 마음도 활짝 여는 시간을 가졌다.

퀴즈를 맞히기 위해 많은 참가자가 손을 번쩍 들고 있다. 사진 김소영
퀴즈를 맞히기 위해 많은 참가자가 손을 번쩍 들고 있다. 사진 김소영

- “지원과 신뢰 있다면 우리도 자립해 자유롭게 살 수 있다”

본격적인 주제 발표가 시작됐다.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선 정성호 충북피플퍼스트 활동가는 “‘자립’은 단순히 혼자 살아간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며 사회 속에서 존중받는 삶을 뜻한다. 하지만 사회는 여전히 ‘발달장애인은 시설에 살아야 한다’, ‘분리되어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편견이자 잘못된 생각”이라며 “우리가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존재임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립한 지 18년 된 정 활동가는 “자립을 고민하는 동료들에게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이 있겠지만 고민만 하지 말고 생각나는 대로 도전해보자’고 말하고 싶다”고 전했다.

이어 “발달장애인이 맘껏 자립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대한민국 사회에 당당히 요구할 수 있고, 또 요구해야 한다”며 공공기관의 알기 쉬운 서비스 제공, 발달장애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방향을 제시할 전문 심리 지원, 활동지원서비스 확대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성호 충북피플퍼스트 활동가가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정성호 충북피플퍼스트 활동가가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발표가 끝나면 주제에 맞는 공연과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공연팀들은 자립을 온몸으로 표현하듯 자유롭게 춤을 췄다. 무대 아래 있는 참가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경주에서 온 권민석 씨는 “사람들은 말한다. ‘가족이 너를 돌봐줘야 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나는 말하고 싶다. ‘나는 혼자 살고 내 삶은 내가 결정하고 싶다.’ 혼자 사는 것 자체가 두려운 게 아니라 지원이 없어서 무서운 것이다. 살 집이 있어야 하고 지원할 사람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우리를 믿어주는 사회가 필요하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우리도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선샤인 아놀드 훌라팀이 훌라 춤을 추고 있다. 무대 아래 참가자들도 노래에 맞춰 함께 몸을 흔들고 있다. 사진 김소영
선샤인 아놀드 훌라팀이 훌라 춤을 추고 있다. 무대 아래 참가자들도 노래에 맞춰 함께 몸을 흔들고 있다. 사진 김소영

- “전국에 피플퍼스트 만들어 모든 발달장애인 당당히 살아가길”

두 번째 주제는 ‘피플퍼스트의 전국화’였다. 이성희 경기피플퍼스트 활동가는 “사람들은 ‘너희 피플 가서 놀다 오는 거 아냐?’라고 말한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거기 가면 나와 같은 장애를 가진 동료들과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어서 참 좋다’고. 나는 피플퍼스트가 나를 행복하게 해서 좋다. 그렇기 때문에 전국에 피플퍼스트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전했다.

이 활동가는 “우리가 직접 말하지 않으면 발달장애인이 한 일자리를 오래 다닐 수 없어 얼마나 큰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지, 좁은 투표용지의 칸이 우리의 마음을 얼마나 불안하게 만드는지 누가 알 수 있겠는가. 발달장애인의 마음을 모르는 사람들과 권리를 무시하는 정부에 우리의 목소리로 권리를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성희 경기피플퍼스트 활동가가 발표하는 모습. 발표 화면에는 “온 세상에 피플퍼스트가 알려지면 좋겠다고. 재미있는 상상이죠?”라고 적혀있다. 사진 김소영
이성희 경기피플퍼스트 활동가가 발표하는 모습. 발표 화면에는 “온 세상에 피플퍼스트가 알려지면 좋겠다고. 재미있는 상상이죠?”라고 적혀있다. 사진 김소영

전남 순천에서 온 조신호 씨도 ‘피플퍼스트가 전국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 씨는 “예전에는 내 생각을 말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피플퍼스트 안에서 나는 당당히 있을 수 있다”며 “피플퍼스트 활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더 많은 발달장애인들이 자신을 표현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기를 바란다. 발달장애인이 주인이 되는 세상,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발달장애인들 “내 몸의 주인은 나다!”

마지막 발표자로 나선 김다인 부천피플퍼스트 활동가는 한국피플퍼스트대회를 준비하며 들은 동료들의 몸과 건강에 관한 경험을 전했다. 김 활동가는 “동료들 중에는 건강검진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사람이 많았다. 심지어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는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 이유는 다양했다.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해서 받지 못한 사람, 혼자서는 병원에 가기 어려운 사람, 애써서 병원에 찾아갔는데 문진표가 어렵고 의료진이 설명을 잘 해주지 않아서 당황한 사람, 장애 정도가 심하거나 폭력성이 있다며 검진을 받아줄 수 없다는 병원까지. 한국의 건강검진 제도는 만 20세 이상 모든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하는데, 그 모든 국민에 발달장애인은 애초에 빠져 있는 것 아닌가”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김 활동가는 “지역마다 발달장애인을 잘 아는 단골 의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발달장애인의 건강할 권리, 그리고 몸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인정하고 고민하는 사회가 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다인 부천피플퍼스트 활동가가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발표 화면에는 “발달장애인의 몸은 주인은 발달장애인의 것이다!”라고 적혀있다. 사진 김소영
김다인 부천피플퍼스트 활동가가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발표 화면에는 “발달장애인의 몸은 주인은 발달장애인의 것이다!”라고 적혀있다. 사진 김소영

경북 경주에서 온 손현석 씨도 자유발언에 나섰다. 그는 “병원에 가면 내 말보다는 보호자의 말을 더 듣고 결정도 보호자들이 하게 한다. 하지만 우리는 직접 설명을 듣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몸의 주인은 우리 자신”이라고 힘차게 말했다.

단체 사진을 찍는 참가자들. 모두 손을 번쩍 들고 있다. 사진 김소영
단체 사진을 찍는 참가자들. 모두 손을 번쩍 들고 있다. 사진 김소영

이틀간 진행되는 제12회 한국피플퍼스트대회는 26일 오전 10시 서울역 광장에서 길놀이, 공연, 자유발언, 폐막식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마무리될 예정이다.